울적한 날이면 유투버 경식스 필름에 올라온 영상을 정주행하곤 했다. 비오는 날 고가도로 아래에서 발레 동작으로 점프 뛰는 슬로모션 장면은 보고 또 봐도 힐링이 된다. 발레리노 출신 작가의 리듬감은 덤이다. 팬이 된지 몇 달 후, 즉흥으로 경식스의 유료 영상 강의를 결제해버렸다.
얼마 전 힐링을 위해 제주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 간 표선 쪽을 돌아다니며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녔다. 우연히 발견한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 '애옥'. 내부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물품들이 한데 모여 조화로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수통, 곡괭이, 조각상, 거울, 주판, 꽃. 자세히 보면 일상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이 듬성듬성 위치해 있었다.
건물 주변 정원은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고, 예쁜 꽃과 나무 사이로 땅을 고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보였다. 여자친구와 이건 무슨 꽃일까 얘기하던 찰나. 우리의 궁금증을 포착하셨는지, 아주머니가 꽃 종류를 설명해주며 수국 몇 송이를 선물로 건냈다. 감귤 밭 사이에 놓여진 낡은 피아노 소품에 대한 자랑과 함께 영상 작가인 아들이 카페 홍보를 안 해준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모든 부모님들의 자식 얘기는 자랑으로 귀결된다더니, 발레리노 출신의 영상 작가로서 유투버를 한다는 아들의 신상 정보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내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인물. 경식스 필름! 놀랍게도 혹시는 역시였다. 팬임을 밝힌 나와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어머니의 대화는 한참 이어졌고, 꽁짜 아메리카노와 이름 모를 꽃 몇 송이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 인연이란 참. 서울에서 영상 속에서 봐왔던 경식스의 어머니가 제주에서 카페를 하고 계셨을 줄이야. 게다가 우연히 방문한 카페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계셨다니. 세상이 참 좁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에서 나온다. MBTI J들이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잘 짜여진 스케줄을 체크하는 것보다 우연히 등장한 에피소드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파워 J라는게 웃기지만)
카페애옥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4 1층
카페애옥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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