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쪼렙 남편의 신혼 일기

포스트잇으로 생활 습관 조율하기

뿔난강아지 2022. 9. 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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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신혼집으로 이사를 왔다. 함께 하는 생활이 즐겁지만, 30년 이상 몸에 밴 생활 습관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집에 오면 양말을 벗어 놓고 나중에 치운다거나, 소변을 본 후 물을 내릴 때 뚜껑을 닫지 않는다거나,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행위나, 옷을 정리하는 방식이나, 밖에서 입은 옷을 착용하고 침대에 눕는다거나 등등. 사소한 삶의 방식에서 차이가 났다.

처음에는 보이는 즉시 지적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주로 내가 지적을 당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상대방에게 마치 잔소리와 꾸중을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했다. 시간차를 두면서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방법이 없을까?

다시,

01/
시간차를 두면서

일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봤을 때 바로 지적하면 감정이 담긴다. 짜증, 실망감, 서운함 등. 사실상 습관을 서로 조율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인데, 감정 섞인 표현이 오가면서 피상적인 다툼만이 지속된다. 따라서 서로가 감정을 배제하고 본인의 습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02/
의사를 명확히 전달

우리는 단기적으로 다툼의 원인이 될 수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계속해서 공유하기로 했다. 만약 한 명이 계속 참으면서 희생하면 결국에 감정의 골이 깊어서 풀 수 없는 상황에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어찌됐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를 상대방에서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럼, 생활습관을 조율하기 위해 1. 시간차를 두면서 2. 의사를 명확히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조그만한 포스트잇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빨간색, 파란색을 사서 눈에 거슬리는 대상이 보이면 포스트잇을 붙여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사인을 보내는 방법이다. 포스트잇에는 '사랑하는 ㅇㅇ씨'로 시작해 내용을 적고, 만약 이틀 동안 상대방이 발견하지 못하면 포스트잇을 냉장고로 옮겨 붙이는 규칙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양말이 침대 옆에 뒹굴고 있으면, (우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물처럼 벗겨진 양말을 오징어라고 부른다) 파란색 포스트잇을 붙이고, '사랑하는 ㅇㅇ씨, 양말은 벗은 후 빨래통에 넣어주면 어떨까요?'를 적어놓는다. 상대방은 귀가했을 때 포스트잇을 보고 '내가 양말을 벗어놓는 습관이 있구나' 깨닫는 동시에 감정을 배제하고 생활 습관을 어떻게 수정하는게 좋을지 고민해본다.

때로는 서로가 거슬려하는 부분을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주문한 물통을 방 구석에 들여다 놨는데, 예비 아내가 먼지가 묻었을지 모르는 생수통이 거슬려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몇일이 지나도 난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필요하면 저기서 물통을 꺼내 마시면 되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포스트잇을 냉장고로 옮겨 붙이고, 해당 내용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눠본 후 어떤 방향으로 생활할지 정리해나갔다.

물론, 하루 아침에 서로가 딱 맞는 생활 습관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는 허상이다.

다만 포스티잇을 활용하면서 습관에 대해 지적하면서 다투는 경우가 부척 줄었고,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앞으로 몇십년을 같이 살지 모르는 부부가 필수적으로 거쳐야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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